초등학교 1학년 여자친구들의 작품입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Posted by 은먀
<몽당크레파스로 협동작품>
- 수업을 하다 보면, 여지없이 넘쳐나게 되는 몽당크레파스.
항상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뭘 만들기에도 항상 한계가 있어서(맨날 양초..)
반쯤 버렸다가 다시 모았다가를 반복하다가, 라파엘에서 크레파스 작품을 보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응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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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락에 스케치를 하고 크레파스를 붙여줍니다.
Tip- 우드락은 얇아서 무게가 무거워지니 들기가 힘들더라구요.
아이소핑크나 합판같이 밑판이 더 힘이 있으면 이동이나 전시시에 더 좋을 것 같아요.
크레파스는 칼로 자르면 잘 잘린답니다..^^ (몽당도 크기가 제각각이라 잘라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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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과정 사진이 없네요..ㅠ_ㅠ 크레파스를 다 붙인 뒤에, 핸디코티로 바탕면을 발라줍니다.
핸디코티와 숟가락 하드보드지짜투리 등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신나게 발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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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디코티와 오공본드를 하루정도 말린 뒤에 수채화물감으로 채색하고, 저는 야외에 전시할
거라서..(상설전시) 아스테이지로 포장해 주었답니다-
크기가 커서 (우드락 2개 사이즈)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워 들고 이동하는데
부셔질까봐 땀 삐질삐질 흘렸어요...!
Posted by 은먀

목표라는건.

분류없음 : 2008/08/24 02:01

원래 싸이월드에서는 클럽과 미니홈피이외에는 잘 들어가보지 않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시선집중의 한 글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여성의 글.
무던히도 길었던 그 글을 다 읽고, 평소와 똑같이 대단하네..하고생각하고 있던 무렵
눈에 들어온 생년월일. 무려 나보다 세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다.
나보다 3년이란 시간을 늦게 태어났지만(정확히 3년 4개월이나)
나보다 10년은 더 살아온듯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글.
http://www.cyworld.com/01023733444/1130999

짧은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 분의 포스팅이유는,
훗날 온갖시련으로 힘들때 다시 그 글을 본다면 그때의 자신감으로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쓴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지금 이 순간까지의 내 삶을 기록으로 남겨볼까 한다.

못가도 서울대는 갈 줄 알았던 초등학교 시절,
왜 공부가 어려운건지도 몰랐고, 왜 집에서 따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기고만장했던 시절. 언제나 그럭저럭 상위권을 유지했고, 6년내내 성적에 관련된
모든 상은 거의 휩쓸었던. 학창시절중 제일 파란만장(?) 했던 나의 초등학교시절.

그렇게 중학생이 되어보니,
나같은 아이들이 콩나물단지속의 콩나물만큼이나 많아서 내가 그닥 천재는
아니라는걸 깨달았던 중학생 시절.
그래도, 그 동안의 기초가 부족하진 않았는지 성적은 그럭저럭 평균 90점이상은
항상유지하고, 그닥 따로 신경써서 공부한 기억도 없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니, 이건 세상이 다른세상.
공부하지 않는자는 성적이 쭉쭉 바닥을치게 되는 시스템.
노력하지 않으면 성적을 얻기도 힘들다는걸 깨닫게 되었지만, 공부에는 그닥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동아리생활에 전념했던 1학년을 보내고 나서,
나름 가지고 있던 손재주를 믿고 2학년 여름방학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미술학원에 가니, 그림실력도 그닥 좋은편도 아니었고 성적도 그닥 우수한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손안에서 무언가 만들어지고, 그려진다는게 좋았고 행복했고 신기해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비록 못하지만.

그렇게 고3을 맞이하니
예체능이 절대 만만하게 아니란걸 깨닫게 되어서
고 3 여름방학 이후부터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 머리싸매고 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30분간 버스를 타고 7시 30분까지 학교에 등교해서
5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7시부터 10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3시에 잠들어서 다시 6시 30분에 일어나고.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는 못할짓을 석달간 했다.

그리고 수능을 쳤고
백퍼센트 만족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렵다 어렵다 했던 수능에서 평소 성적보다
조금 더 잘나온 점수를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또다른 시험을 준비해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수능공부보다 더 힘든 실기시험준비.

성적에 비해 실기력이 너무 뒤떨어졌던 나는
내가 가고싶은 학교, 학과와 학원에서 추천하는 학교, 학과가 너무나 달라서
거의 우기다 시피 하여 내 마음대로 학교 원서를 쓰고

그렇게 여태껏 배워왔던 석고소묘며, 석고수채화를 다 제쳐놓고
발상과표현수업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석달간 한명짜리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두꺼운 추리닝 두벌로 그해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학은 아니지만 원하던 학과에 입학했고. 봄이왔다.

스무살이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19년간 지방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서울사람들과 생활하려니 문화의 격차며 생활의 격차며 너무 힘든 한학기였다.

부모님몰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이 부족한건 아니었지만 대학생이 되면 꼭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베스킨라빈스며, 파리바게뜨며, 레스토랑이며 이리저리 학기중 방학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었고, 또 한편으로는 열심히 썼다.
호기심에 가입한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았을때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친구들 다 배낭여행가던 여름방학에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만난 아르바이트 중 하나가 미술학원이었다.
처음 시작한 이유는 단지 시간에 비해 보수가 가장 좋은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이었다.
4학년이 되어서까지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매력이란 안가르쳐 본 사람은 절대 모를 그런 알싸한 맛이 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인연이 닿은 한 원장님의 제의로
졸업도 하기 전 12월에 새로 오픈하는 미술학원의 주임교사로 가게 되었다.
말은 주임교사지만 사실 가장 힘든시간이면서도 가장 많이 배운시간이 아니었나싶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 내 앞으로 쏟아지는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날 때 마다
내가 도대체 왜 여기 있는지조차 생각하기 싫을정도로 정신이 많이 황폐해져갔다.

그러다 어느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돈도 많이 벌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가르치는 그 아이가 나로 인해 즐거운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하지만 그쯤의 나는
너무 많은 업무로 지친탓에 그렇게 이뻐라 하던 아이들에게도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 수업에 전혀 만족하고 있지 않은 나를 보게되었다.

그렇게 10개월만에 첫번째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당장 아동미술스터디에 나갔으며, 어린이북아트수업을 등록했다.
그리고 두번째 미술학원에 출근했다.

밖으로 나오니 세상은 너무 배울것도, 얻을것도 많았고
함께 공유하고 나눌 선생님들도 너무너무 많았다.
한동안 그 정보의 홍수속에 빠져 행복함만 느끼고 살았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내가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만큼 나에게 돌아오는것이 칭찬과 그에대한 댓가가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나에게 더 많은 일거리가 돌아오는 걸 보고
나는 미술학원이라는 존재가 나를 이렇게 지치게 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딱 일년간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업했고,
나에게 맡겨진 모든잡다한 일거리도 해결했고,
이제 그 일년이 지나 다시 나의목표를 다 잡으려 한다.

그래도 그 동안 열심히 뛰어다닌 보람이 있어서
여기저기서 오라고 불러주셔서 너무 행복했고 ,감사했다.

오늘,
나의 세번째 미술학원을 결정했다.
앞으로 또 어떤 시련과 아픔이 닥칠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 이름을 걸고 자랑스럽게 내가 가르친 아이예요 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때까지.
그 아이들이 자라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나와 함께 수업을 할 수 있을때까지.
열심히 달려야지.

그래도, 돌아보니
첫번째 보다는 두번째가 조금 더 좋았으니 두번째보다는 세번째가 조금 더 좋을 듯 싶다.

앞으로 2년 뒤
내 이름을 걸고 네번째 미술학원을 맞을 수 있길 바라며.

과거의후회를닫고, 미래의걱정도닫고, 오늘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야지.


Posted by 은먀